아직 경기가 끝난 후 (이 경기는 한국시간 11월 3일 일요일 새벽 3시 즈음에 끝났으므로) 하루가 지난 시점에도 여운이 참 남는 거는 오랜만인거 같습니다. 그것이 축구던, 야구던, e스포츠건 모터스포츠건 무엇이건 말이죠. 올해 치뤄진 리그오브레전드 월드챔피언쉽 2024 결승전 경기의 여운이 말이죠. (월즈24라고들 합니다.)
T1 과 그에 맞서는 중국 LPL리그 팀 빌리빌리게이밍(BLG) 과의 결승전. BLG 입장에서는 “월즈기준 LPL 팀 5전제 상대전적 무패의 T1에게 1패를 안겨주겠다” 라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한 동기부여로 결승전에 임했는데요. 이번에 4강에서 BLG를 이긴 웨이보게이밍(WBG)가 작년 서울 고척돔에서 있었던 T1과의 5전제 결승전에서 3:0으로 졌던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안가는 말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3세트까지는 분명 BLG의 우세한 경기긴 했습니다. 그만큼 선수들이 준비도 잘 해왔고, T1의 선수출신이었던 이지훈 코치의 경험때문이었는지, 일부 경기는 오히려 T1의 스타일을 파훼한듯한 경기를 보여주며 3:1로 끝낼 수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을 저도 경기를 보면서 했던 거 같습니다. 실제로 3세트까지만 보고 중계를 끄신 분들도 많았다고 하더군요.
보통 오래전 야구 팬들은 보통 이럴때 떠올린 “경기는 삼성쪽으로 기울고” 라는 문장과 함께 “경기는 BLG에게 기울고” 라는 문장이 적절하다 싶을 순간 4세트에서…
이상혁은 작년의 징동전 아지르 플레이와 흡사한 사일러스 플레이로 경기를 부쉈습니다. 아니 정말 “혼자서 경기를 다 부쉈다” 라고 해도 되는 경기였습니다. 솔직히 이 경기가 미스테리했던 것은 BLG가 준비한 전법은 LCK에서 젠지가 T1을 상대할 때 쓰는 이른바 “젠지 클래식” 전법 그대로를 복사해왔던 것이고, 분명 초반 최우제 선수를 3킬로 아웃시킬 시점만 해도 이 구도 그대로 였기 때문에 경기 후에 복기를 한 많은 분들도 “이건 BLG가 구도상으로는 지면 안되는“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작년 징동게이밍과의 4강전때 이런 빈틈은 여럿 부숴봤다는 제오페구케였을까요? 아니면 젠지에게 시달릴대로 시달려봐서 단련이 된 거였을까요? 이 게임은 뒤집혔고, 5세트 최종전까지 갑니다.
그리고 분명 4세트 대패의 여파 때문일까요? 5세트에서 BLG의 서포트 러원쥔(ON) 선수의 본헤드 플레이가 나오면서 경기가 많이 틀어집니다. 아주 잠깐, 그나마 BLG가 한타 교전을 이겼다 싶었던 상황도 오히려 최우제-문현준-이상혁 3명이 5명을 틀어막아버리는 역전 교전까지 나오면서 이미 게임 자체는 돌이킬 수 없이 틀어졌고, 그나마 마지막 줘딩(Knight) 선수가 역전을 노리려던 텔레포트 시도마저도 중간에 류민석 선수에게 발각되면서 막히면서 게임은 거기서 끝났습니다. 그렇게 별 다섯개. T1의 월즈 5회 우승, LCK의 3년 연속 월즈 우승이라는 대기록이 완성된 순간이었습니다. (22 DRX - 23 T1 - 24 T1)
솔직히 LCK 24 시즌 초반만 해도 T1은 “디펜딩 챔피언 답지 않은” 모습이 많이 보였던 것은 사실입니다. 스프링 시즌 라이벌팀인 젠지와의 격차가 많이 벌어지고, 서머시즌에서는 한화생명의 상승세에 눌려서 이후 월즈 선발전도 “4시드 막차”를 타서 올라온 (디플러스에게 선발전에서 크게 패배를 당한 것도 사실이라…) 마당이라 T1의 대회전 평가는 “4강을 가면 다행” 이라는 평이 많았지만, 다행히 4강은 가면서 한중전 결승을 완성하고 (오히려 8강에서 젠지가 북미 Flyquest 를 상대로 다소 힘든 경기를 했습니다.) 젠지전 4강을 3-1로 가볍게 승리한 시점에서 드디어 5회 우승 가능성을 이야기할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
물론 BLG가 그렇다고 약한팀은 아니었다는건 맞습니다. 스위스 토너먼트 탈락 직전에서 겨우 올라는 왔지만 8강에서 오히려 전체적인 선수들의 폼이 살아나면서 8강 한화전을 3-1로 깔끔하게 끝냈고, 4강 웨이보와의 작년 4강 리매치는 3:0으로 이자 쳐서 돌려줬을 정도로 실력이 좋았기 때문에 유일한 약점인 “봇 듀오의 기복이 심한 것” 만 넘어선다면 우승이 가능해보인다 싶었고, 실제로 결승 3세트까지는 그런 기복이 많이 보이지 않거나, 보이더라도 주장 천쩌빈(Bin)의 “탑 라인 스왑전법” 으로 그 기복을 보완하는 전법은 충분히 한국 팀들도 참고가 가능해보일 법한 작전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상대가 T1이라는 것” 이라는게 맞을 거 같습니다. 정말 이 말밖에 설명이 안될 것 같단 생각이 들 정도로, T1은 4세트와 5세트, “대상혁” 페이커의 힘이 그래도 작용해버렸고, 페이커를 막아도 나머지의 선수들의 기본기를 틀어막기가 어려워지면서 4세트와 5세트를 그대로 대패하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점입니다. 솔직히 그래도 4세트는 정말 “미스테리” 하긴 합니다. 분명 거기서 하나라도 삐끗했으면 오히려 BLG는 그대로 미드 방향에서 기선을 잡고 쭉 뚫기가 가능했다는 걸 생각하면, 정말 이론의 영역과 실제의 영역은 다르다는 것을 생각해봅니다.
아무튼 그렇게, T1은 “대상혁 전설”의 완성을 “T1 팀 통산 월즈 5회 우승 + LCK의 3년 연속 우승 + T1의 2년 연속 월즈 우승” 이라는 대기록으로 마쳤습니다. 내년은 드디어 “퍼스트 스탠드컵” 이라는 전반기 국가대항전이 신설되고, LCK도 “피어리스 드래프트” 라는 누적형 밴픽 선택 방식의 룰이 도입 되면서 각 구단의 실력 평준화를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과연, 내년에도 T1은 “대상혁 전설”의 한 페이지를 더 추가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다시 권토중래를 노리는 젠지와 기타 다른 팀이 그 자리에 버금가는 역사를 쓸 수 있을까요? 아무튼 LOL 대회의 올해는 이렇게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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